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나는 이십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내 가족도 함께 나이 들었으나, 멈춘 나의 시간 안에서 나는 여전히 그들을 나의 유년시절 울타리라는 생각에 가두어 두었었나 보다. 모두는 각자의 삶이 중심이 되어 쳇바퀴 돌 듯 살아가나, 그 속에서 내린 수많은 결정에 대한 책임 또한 지고 있다. 그 와중에 나는, 결정을 미루고 있다. 아니, 책임을 미루고 있다.
듣기 싫은 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예견되지 않은 상황과 준비되지 않은 마음을 무시하고 날아든다. 친구의 취업 소식, 부모님의 아프다는 탄식, 미뤄진 설거지, 귀찮아서 씻지 않은 몸에서 느껴지는 가려움... 모든 것들이 나를 향해 소리친다.
"뭐라도 좀 해봐."
그런데, 나는 뚱딴지 같은 것을 궁금해 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내가 살아가는 주체로서 내 삶에 대해 정의를 내릴 자격은 되는가. 내가 '이것'이 가치있다 정의 내리면, '저것'은 자연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리니 상대적으로 가치가 적은 것이 되는 건가. 그러나 우리는 가치의 불문율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지 않은가. "효도, 취업, 돈, 사회적 지위..." 너는 과연 이것을 배척하고 배신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아, 그런데 이 '정의'가 그 '정의'는 아니잖아..." 철학적 고민에 앞서 무식함을 반성해야 하는 것은 어찌되었든 사회적 체면이 우선이 될 수 밖에 없는 내 숙명인 건지.
정의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네가 내린 정의는 어차피 무너져 내릴 것이다. 무엇이 '되려고' 애쓰든, 너는 되지 못할 것이다. 되려 어떤 종착점도 정하지 않고 무엇이든 '하려고' 애쓸 때, 비로소 진실에 가까워 질 것이다.
그럼으로써 너는 해낼 것이다. 네가 얻게될 영광이 아닌 행복에 집중해야 할 것이고, 너라는 사람이 지닌 가치가 아닌, 네가 발견하고 만들어내야 할 가치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 온지 어느덧 4년이 지나서,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해 본다. 나는 참으로 작은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음과 동시에, 그렇기에 내 이 작고 옹졸한 마음 안에 아무도 들여놓지 못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라는 사람의 행복, 내가 바라보는 세상, 내가 꿈꾸는 나의 미래, 내 주변에 자리한 사람들, 물건들, 그리고 내가 만들어내는 때로는 그럴듯 한, 그러나 때로는 또 가엾기도 한 상황들. 모든 것이 나라는 사람으로 가득차서 주변은 공허하나 실제로는 숨 쉴 공간 조차 없이 붐비었다. 내가 낭비해 온 삶의 시간들은 내 삶이 지닌 희소성에 비해 너무도 무난한 행태로 소비되어 왔다.
이런 나의 모습은 흥밋거리, 혹은 관심의 소재는 되지 않았고, 그것이 좋은 소식이라도 되는 양,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왔다. 외로움에 대해 논하던 생활, 그러나 실제로는 솔직해지지 못했던 순간들이 슬펐으나 그 자체로의 의미 또한 있었다.
나의 모자람을, 그 불완전하여 슬프나 자연스러운 그 모습을 조금더 일찍 사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 인생의 초라하고 어수선한 형편을 기꺼이 누군가에게 그늘 삼아 쉬도록 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의 삶이 욕심이 아닌 만족감을 향한 여정이였다면, 한계에의 도전이 아닌 한계를 의식하지 않는 삶을 지향했다면. 아니 사실은, 나의 삶에 너를 초대하여 함께 즐길만한 여유를 잠시라도 가졌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