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SAT 고득점멘토 1550입니다.
사실 오늘 AP Calculus BC 공부하다가 만사가 귀찮아져서 ㅎ 마침 미션 칼럼도 하나 써야 하겠다 해서 침대에 누워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제 첫번째 미션 칼럼의 주제는 SAT 시험당일 경험담: 힘들었던 점, 기억남는 문제 또는 시험장 분위기. 입니다! 제 평소 칼럼들과는 달리 편하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일종의 수기 형식으로 쓰게 될 것 같네요.
일단 저는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중국 소재 국제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서 12월 5일에 에세티를 봤어요. 원래였다면 본교에서 시험을 봤어야 했지만, 코로나 사태 때문에 중국 입국이 당시에는 힘들어서 이 방법으로 시험을 봤어요.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이 드는게, 12월 시험들이 줄줄이 취소되는 와중에 대원외고는 closed center 여서 자리가 없을 거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지금은 중국 입국이 가능해져서, 자가격리를 하는 중이에요.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11일차네요.
저는 서울 서쪽 끝에 살고, 대원외고는 서울 동북쪽 끝에 있기 때문에, 새벽 일찍 일어나 아빠 차를 타고 강변북로를 통해 대원외고에 도착했어요.
사실 대원외고는 저한테 있어 굉장히 애증섞인 학교에요. 어떻게 보면 제가 유학을 오게 된 간접적인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유학을 왔는데, 그 전에 초등학교는 외국에서 다니고 중학교 3년을 한국에서 다니는 동안 외고 입시를 준비했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가까운 명덕외고를 준비했었는데, 그새 눈이 높아져서, 모두가 말린 대원외고 입시를 준비했었어요. 사실 모두가 말리진 않았고요, 현실적이었던 진학담당선생님만 조금 말리고 다른 선생님들은 다들 응원해 주셨어요. 제가 말은 조리있게 잘 하는 편이라서 면접 점수는 항상 높았던 탓도 제가 눈을 높히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하지만, 이제 또 되돌아보면 제가 대원외고에 입학했었더라면 심각한 한국 일반 인문계고등학교의 문제점에 역겨워하지 않아했을거고, 그럼 한국에서 계속 학교를 다니고 이제 딱 고3이 되었겠네요.
또 굉장히 신기했었던게, 제가 중2때 엄마가 점집에 간 적이 있으세요. 그때 제가 외국에 나가 살거라고 했다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외국생활은 조기유학으로 족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때 제 꿈은 대원외고 - 고려대 - 삼성전자 였어요. 굉장히 한국인스러운 꿈이죠 ㅋㅋ. 하지만 이제는 외국에 사는것 뿐만 아니라, 시민권도 외국 시민권을 가지게 되었고 (사실 미국 시민권은 태어날때부터 있었지만, 부모님이 둘 다 한국에 계시면서 이걸 가지고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저도, 부모님도 해본 적 없어요), 월스트리트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탈리아나 홍콩으로 교환학생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사실은 제 인생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곳인 셈이에요.
하여튼, 그렇게 옛날 추억을 되새기고 한참 홍대문 (저 사진 속의 문이 큰 붉은색 문이라고 해서 홍대문이에요. 2년 전에 자소서를 쓰면서 알게 되었죠 ㅎ) 앞에 서있었어요. 내가 대원외고 면접을 딱 제작년 이맘때에 왔었는데.. 하면서요. 제작년 그때는 눈이 꽤 왔었는데 다행히 에세티 시험날에는 눈이 오지 않았어요. 조금 쌀쌀하긴 했는데, 옷을 따뜻하게 입고 가서 문제가 되진 않았고요. 교실 안으로 들어가니까 그런데, 히터가 안 틀어지더라고요. 3교시 즈음 되니까 틀어지긴 하던데 그때는 이미 추위에 적응한 후였어요. 겉옷을 전부 벗고 화장실에 가고 복도를 돌아다니는데, 겉옷을 벗으니 꽤나 춥더라고요. 가져온 코스트코 아몬드 초코볼을 아작아작 씹고 친구들한테도 나눠주고 하면서 한 30분동안 시험 시작을 기다렸어요. SAT연필 (HB=2B 연필) 이 따로 있다는걸 모른 친구한테 연필도 나눠주고 하면서요. 그렇게 놀다가 1교시가 시작됐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12월 SAT를 봤어요. 그리고.. 여기서 인증을 할게요. 음 저는 운이 굉장히 좋았어요. 솔직히 다른 월에 시험을 봤다면 고득점 멘토 자격도 없었을 수도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항상 리딩을 잘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희망전공이 희망전공이다 보니 (서양철학이에요), 고서적과 고전도 자주 읽었고 greco-roman mythology, classic mythology 를 공부하면서 어원학도 어깨너머로 배웠고요. 사실 신들의 이름만 많이 외워도 영단어를 많이 외울 수 있어요. 의술의 신 Asclepius 의 딸 위생의 신 Hygieia 에서 hygiene 이라는 단어가 유래했고요, 시간을 뜻하는 접두사 chrono- 는 시간의 신 khronos 에서 유래했어요. 재밌죠? 서양철학 재밌어요. 다들 전공했으면 좋겠어요. 딴소리는 이만 하고, 제가 본 그 어느 모의고사보다 어려웠어요. 제가 시험을 보고 후배들 주려고 정리한 게 있는데, 음 이걸 여기에 쓰는게 저작권법 위반은 아닐거에요. 출처만 적시하는거니까.. 아마?
[Reading]
보이시듯, 리딩 8개를 틀렸는데 총점에선 5점밖에 감점이 되지 않았어요. 이렇게 쓰니까 되게 자랑글같네요 ㅋㅋㅋ 제가 운이 좋았던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솔직히 되게 겸손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 실력도 분명 있었겠지만, 커브가 기록적으로 좋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하여튼 리딩은 커브가 보여주듯 굉장히 어려웠어요. 저희 시험장 당시 분위기를 설명하자면, 65분이 지나자마자 왼쪽 오른쪽 앞 뒤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욕들이 한 두 마디가 아니었어요. 다시 아몬드 초코볼을 와그작거리면서 화장실로 가는데, 거기서 "이번 시험 되게 쉬웠다?" 하는 친구가 얼마나 때려주고 싶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네요 ㅎ. 제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운이에요.
최근에 인스타를 보다가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공정하다는 착각 으로 유명한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제안을 봤어요: 어차피 명문학교들의 지원서류들은 대부분 자격을 갖춘 학생들이고 그 중에서 무의미한 과정을 통해 소수를 추린다. 차라리 추첨제를 통해 입학과정에 운을 가미하자. 저는 그 주장에 동의해요. 고작 18살짜리들이 서류상으로 아무리 화려하게 펼치어 내도 결국엔 아직 청소년들이에요. 그 사이에서 얼마나 차이가 나겠어요? 저는 운이 좋아서 -8 (raw) = -5 (score) 의 커브의 수혜를 받았지만, 운이 좋지 못한 다른 학생은 -1 (raw) = -3 (score) 의 커브를 받을 수도 있어요. 성적표를 받아들은 순간, 그렇게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험이 끝나고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어요. 수학을 잘 봤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친구가 서술형 1번에 6이지? 하는거에요. 그때 저는 밖에 SATII만 보고 몇시간째 저랑 다른 친구 한명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서둘러 나가려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6은 아닌거에요. 그래서 12 아니야? 하니까, circumference 가 반지름 아니야? 라고 하더라고요. 네. 이것도 운이에요. 내가 아는 문제가 시험에 나오는 것, 모든건 운이에요. 성적표를 받고 그런 생각은 계속 심화되었어요. 인생은 운빨이라는 생각이. 그러니까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인생을 운에 맡기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고 해서 낙심하지는 마세요. 그냥 그날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니까요. 그냥 울고, 기도하고, 털어버리고 다시 준비하세요. 다음 시험날에는 운이 좋을테니까요.
일기쓰듯이 쓰다 보니까 너무 두서없는 수기가 되었네요. 그래도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시험은 운이라는 것,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것. 그걸 말하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