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45_동유럽 여행: 체코와 헝가리
한 번쯤은 야간 버스를 타보자는 생각
▲ 파리에서 프라하로 넘어가는 버스 안에서
유럽 여행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 인접국을 꼭 순서대로 방문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 동선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순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폴란드-크로아티아-이탈리아-오스트리아-스페인-프랑스-체코-헝가리-독일로 널뛰기를 하며 동유럽과 서유럽을 오갔습니다. 플릭스버스와 저가항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유럽을 여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한 번 장거리 버스를 타보자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길게 버스를 타볼까 하는 치기 어린 생각이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 제국의 근거지
친구들과 만나는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오스트리아는 먼저 방문하게 되었고, 이제야 체코와 헝가리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냉전 시기 동유럽은 한국과 교류하지 않았고 소련 붕괴 이후에도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곳입니다. 하지만 사실 동유럽은 관광지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 제국의 주요 활동 거점이 바로 동유럽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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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프라하 야경
체코는 예전부터 공업과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주요 산업 거점이었습니다. 체코의 전신인 보헤미아 왕국은 왕국의 주요 세수를 담당할 정도로 부유했으며 히틀러 역시 1938년에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여 공업화된 체코를 유용하게 활용하였습니다. 정치적인 권위도 상당했습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아래에서 체코의 전신인 보헤미아 왕국은 헝가리와 함께 제국의 주요 구성원이었습니다. 황제를 뽑는 선거권을 가진 선제후가 보헤미아 국왕이기도 했습니다.
보헤미아 지역에 개신교 때문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과 갈등이 발생하였으나 당장 오스만 제국의 위협이 더욱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기 보헤미아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아래에 있었습니다. 대타협(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으로 대변되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유연한 통치 방식도 한몫하였습니다.
상당한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체코
그러다가 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붕괴하고 체코슬로바키아가 새롭게 전면에 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독일계 주민을 빌미로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요충지인 수데텐란트를 무혈입성하고(뮌헨 회담), 이어 체코슬로바키아 자체를 합병하였습니다.
▲ 프라하의 봄이 발생한 바츨라프 광장
2차대전 후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동구권의 일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징적인 자유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처럼 체코슬로바키아 내의 반스탈린, 반권위주의 의식은 체코 내에 팽배했는데, 소련에서 거주했던 알렉산데르 둡체크마저 당 제1서기가 되자마자 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할 정도였습니다. 1968년 제시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에서 밝힌 것처럼 비밀경찰을 축소하고 언론과 다당제를 허용하는 정책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혁은 다른 소련과 동구권 국가를 자극하였습니다. 결국 소련의 개입으로 프라하의 봄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냉전 이후에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분할되어 별개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체코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과는 대조적으로 양측은 평화적인 합의에 따라 영토와 인구를 분리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침입으로부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일원까지
▲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체코의 전신인 보헤미아가 종교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일원으로 남았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헝가리가 붕괴했기 때문입니다. 마자르족을 기원으로 하는 헝가리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신성 로마 제국 산하의 왕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동유럽 일대의 강국으로 군림하던 헝가리 왕국은 오스만 제국에게 모하치 전투에서 대패하여 왕국이 붕괴하였습니다. 그 후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헝가리, 오스만 헝가리, 동헝가리 왕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 오스트리아가 반란을 진압한 후 부다의 모습을 그린 그림
그 후에도 헝가리는 끊임없이 독립을 전개하였습니다. 특히 1848년에는 반오스트리아 혁명을 일으키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곧 오스트리아에게 진압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헝가리는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왕국이 합쳐진 이중제국을 형성한 대타협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스트리아 황제가 헝가리 왕을 겸하되 국방과 외교 등의 중요한 정책을 제외한 자치권을 확보할 수 있는 타협안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제국의 주요 일원이 된 헝가리는 또 하나의 지배자가 되어 제국 내에서 영향력을 확보하였습니다.
▲ 부다페스트에 있는 Holocaust Memorial Center
1차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붕괴하자 독립된 국가가 되었고, 헝가리는 2차대전에 추축국으로 참전하였습니다. 그래서 헝가리도 홀로코스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많은 유럽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헝가리인들도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유대인을 독일군에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종전 후에는 동구권의 일원으로, 현재는 동유럽의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헝가리 역시 소련의 사회주의에 저항하여 민주화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결국 소련의 진압으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를 1956년의 헝가리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9일 동안 프라하, 부다페스트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이때쯤 허겁지겁 고우해커스 지구촌특파원 지원서를 작성하기도 하였습니다. 학교 복학도 처리했고 다른 서류들도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체코 프라하 한식당 본죽 추천, 푸짐한 김치찌개가 8유로!
번외로 한식당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실 이때 제가 조금 감기에 걸려 몸이 아플 때였습니다. 1년 내내 한 번도 아프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근처에 있는 한식당에 찾아가 몸 상태를 말하고 아주 맵게 부탁드린 김치찌개를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백종원의 골목식당 애청자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해외에서 한식당을 방문할 때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한식이 아니면서도 한식 재료를 구하기 어려우니 가격은 가격대로 비싼 것이지요. 완벽한 현지화, 특성화를 이룬 일식과 중식에 비교한다면 너무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느낀 바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 식당 내부
이번에 방문하게 된 체코 프라하의 한식당은 달랐습니다. 사장님의 가치가 확고했습니다. 홍보하지 않고, 즉 광고비용으로 지출하지 않고 음식에만 집중해서 제대로 된 한식을 비싸더라도 꾸준히 팔겠다는 자세로 가게를 열었다고 하셨습니다. 현지인들에게는 아직도 매우 비싸다고 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호기심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한국인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제대로 된 한식을 외국에서 제공하는 것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두 번째로 인사드리며 주문한 더 매운 김치찌개
이미 계약을 8년으로 해버려서(체코에서는 장기계약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최소 8년 이상은 제대로 된 한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할 것이며, 순대국은 물론 직접 담근 깍두기를 제공하여 한국 자체를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는 포부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도 신이 나서 우크라이나, 앙카라, 러시아, 체코, 프랑스, 이탈리아의 한식당, 일식당, 중식당의 가격, 슈퍼마켓에서 구할 수 있었던 식료품들을 비교하며 사장님을 응원했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정말 옳은 길이라고, 한식 흉내만 내고 비싸게 팔아 한국인만 향수병으로 아쉬운 대로 해외에서 찾는 한식당이 아니라 제대로 된 한식을 외국에서도 합리적으로 먹는 기회를 만드는 것은 분명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파리 → 프라하
(출발) 2019.07.13. 21:20 → (도착) 2019.07.14. 10:45
버스: FlixBus (플릭스버스)
가격: 52,070원
숙박비: 3박 35.10 EUR (약 45,492원, 2019년 10월 29일 기준)
비고: 야간 버스 이용
총비용 : 97,562원
프라하 → 부다페스트
(출발) 2019.07.19. 07:20 → (도착) 2019.07.19. 08:45
항공사: 체코항공(Czech Airlines)
가격: 60,339원
숙박비: 4박 58,568원
비고:
총비용: 118,907원
항공비(교통비) : 112,409원
숙박비 : 104,060원
총비용 : 216,469원
전편 다시보기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0_왜 지구촌특파원에 다시 지원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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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40_가우디 대성당: 가우디가 진정으로 높이 세우고 싶었던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