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24_성 베드로 대성당과 성 베드로 대광장
여행 중 최악의 숙소
숙소는 최악이었습니다. 상태도 엉망이었습니다. 방에 침대가 그냥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제가 잠을 잘 자는 편이지만 이건 너무 심했습니다. 특히 로마에서는 새벽에 일어나서 정말 피곤했는데, 숙소의 상황도 여의치 못하니 더더욱 몸 상태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힘을 내서 바티칸부터 관광했습니다.
바티칸 시국의 기원은 바로 피핀의 기증
오늘날은 바티칸 시국은 바티칸과 그 일대를 포함하는 작은 독립 국가이지만 과거에는 교황령으로 강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바티칸 시국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
서로마 제국 멸망 후 건국된 프랑크 왕국의 궁재(Mayor of the Palace, 프랑크 왕국의 재상)였던 피핀 1세의 후손인 피핀 3세는 751년 “실권을 쥔 자가 왕위의 오르는 것과 무능한 왕위 계승자가 왕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을 교황에게 보냈습니다. 이에 교황은 실권을 쥔 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의 정당성을 인정했고, 피핀 3세는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피핀 3세는 754년 이탈리아 중부의 땅을 교황에게 기증하는데, 이것이 바로 로마 교황령의 시작입니다. 물론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 반도를 탈환하며 로마에 세운 로마 공국을 그 기반으로 보지만 그때에는 동로마 제국의 영향력을 받고 있었고 이민족의 침입도 빈번하던 시기였습니다.
서로마 제국 이후 주인 없는 땅이 되었던 이탈리아 반도
피핀의 기증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476년 서로마 제국 이후 혼란스러웠던 서유럽 지역의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군인황제가 난립했던 3세기의 위기, 콘스탄티노플 천도를 거쳐 로마 제국은 그 운이 다하고 있었고, 심지어 서로마와 동로마는 분리되었습니다. 서로마 제국 멸망 후에는 고 훈족, 동고트족, 서고트족 등이 난립하여 서유럽 일대의 각자의 왕국을 세웠습니다.
다른 이민족들이 이단으로 분류된 아리우스파를 믿은 것과 대조적으로, 프랑크족은 정통 카톨릭 교회와 제휴하며 그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프랑크 왕국은 정치적 정당성과 권위를, 로마 교회는 정치적인 보호를 위해 이 둘은 서로 제휴하였습니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동로마 제국의 영향력이 이탈리아에서 감소하면서 로마 교회는 이민족의 침입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상금지령(성상파괴령)으로 인해 동서 교회의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더더욱 로마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 카롤루스 대제 대관식을 묘사한 라파엘로의 작품, 프레스코, 바티칸 사도 궁전
이때 프랑크 왕국은 로마 교회를 보호했고, 로마 교회는 카롤루스 황제의 제위식을 거행함으로써 서로 정치적으로 협력했습니다. 훗날 오토 1세 역시 같은 방식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직위를 교황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동로마 제국과의 미묘한 신경전에서 새롭게 등장한 황제와 교황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마와 동로마는 분리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동로마 제국의 입장은 서쪽의 영토를 상실했을 뿐, 엄연히 황제는 동쪽에 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리통치는 로마인들에게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닌 것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제가 편의상 동로마 혹은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말하고 수도도 콘스탄티노플이라고 언급하지만 사실 콘스탄티노플의 공식명칭은 ‘새로운 로마’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교황은 영향력을 상실한 동로마 제국 외에 조력자를 서로마 지역에서 찾기 위해 동로마 제국 황제 외의 새로운 황제를 언급한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 차는 동서 교회의 갈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한때 강력한 권력을 자랑했던 교황령
우리가 세계사 교과서를 보게 되는 카노사의 굴욕, 아비뇽 유수도 바로 정치 권력과 교황의 대립 속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그 후 교황령은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합병되었고, 바티칸의 포로를 자처하며 이탈리아 왕국과 대립하던 바티칸 시국은 무솔리니와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체결하면서 오늘날 바티칸 시국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다른 의미로 종교와 정치의 갈등과 협력은 도시국가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습니다.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중부 교황령과 독일 지역의 신성로마제국 사이에서 외교적 줄다리기를 하며 자치와 독립을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동로마 제국의 봉신을 기원으로 하는 베네치아는 황제와 교황의 긴장감을 더더욱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치며 바티칸 외곽부터 천천히 둘러보겠습니다.
바티칸 미술관을 둘러보는 방법
▲ 바티칸 미술관 입구
제가 6월에 방문했을 때에는 예약하지 않은 방문객은 오후 2시 30분부터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오전에는 미리 방문을 예약한 방문객이나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는 사람만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도 예약한 사람들이 계속 입장합니다. 저는 오전 11시 30분부터 2시 30분까지 계속 기다리다가 쭉 둘러보았는데, 만약에 예약을 할 것이라면 오전 방문을 추천합니다. 오후에 입장한다면 예약한 의미가 없습니다. 정말 사람이 많아서 움직이지 않아도 계속 이동하게 됩니다. 바티칸 미술관은 성수기와 비성수기를 가리지 않는 세계적인 명소이니 방문한다면 오전부터 기다리다가 오후에 입장하거나, 추가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오전에 입장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상인들에게 속지 말도록 합시다. 어차피 그들에게 입장권을 사도 기다려야 하고, 그럴 바에는 따로 예약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도 주변의 상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
저는 우선 성 베드로 대성당과 성 베드로 광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성 베드로 대성당은 사실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불리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이곳에서 지금도 교황의 주도하는 카톨릭의 주요 행사가 열립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 공사는 1506년부터 1626년까지 진행되었으며 수많은 건축가가 공사에 참여했습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도 건축에 참여했습니다. 지금도 보수공사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성 베드로 성당 내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에도 성 베드로 성당은 카톨릭의 미사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고 실례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은 편이 좋겠습니다.
▲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제대와 발다키노
화려한 내부장식과 함께 교황이 미사를 집전(전례, 즉 교의 또는 관례에 따라 규정된 공적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 의식에 따라 집행하는 것)하는 제대와 발다키노도 볼 수 있습니다. 편하게 돌아다니다 보면 중간중간에 요원들이 제지할 때가 있습니다. 정숙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으니 지시에 잘 따르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
다른 장식들도 볼거리가 많지만 피에타 때문에 성 베드로 대성당을 방문합니다. 미켈란젤로가 24살 때 교황청 주재 프랑스 대사 랑그로사이오 추기경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를 안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성 베드로 대광장과 바티칸 일대
▲ 성 베드로 대광장 전경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돔으로 올라가면 성 베드로 대광장 전경을 찍을 수 있습니다. 성 베드로의 상징인 열쇠처럼 열쇠 구멍처럼 광장이 조성되었으며 광장은 최대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 대회랑
광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바로 대회랑입니다. 대리석 기둥과 돌기둥이 회랑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랑 위에는 역대 교황과 성인들의 성상이 제작되어 있습니다.
▲ 오벨리스크
광장 중앙에는 오벨레스크(고대 이집트 왕조 시기 태양 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도 높게 솟아 있습니다. 로마 시기에 이집트에서 로마 시로 옮겨졌으며 오늘날에는 바티칸 시국에 위치해 있습니다.
▲ 바티칸 전경
돔에서 바티칸 전경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비가 와서 제가 방문할 때에는 비가 와서 맑은 날씨를 담지 못했습니다. 그 점이 아쉽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드디어 바티칸 박물관에 입장했습니다.
전편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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