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50_부다 성과 Holocaust Memorial Center
헝가리의 역사는 조금 복잡합니다. 오스트리아 이중제국 이후에는 제국의 수혜자였지만, 그 이전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 격렬하게 저항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위협과 지배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1차 대전 후 헝가리 왕국은 진정 독립을 이루게 됩니다.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에게 패하여 헝가리 왕국이 멸망하여 합스부르크, 오스만 제국, 동헝가리 왕국으로 분리된 지 30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추축국에게 침묵하며 나치 히틀러에게 동조했던 헝가리
그러나 헝가리는 사실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국에 가까웠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헝가리 왕국을 독립시켜준 민족자결주의는 동시에 헝가리 왕국의 지배를 받는 국가들이 독립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차 대전 후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왕국(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루마니아의 독립이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헝가리를 상실된 영토를 어떻게든 확보해야만 했습니다.
▲ Holocaust Memorial Center
문제는 그 선택이 나치 히틀러의 편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1940년 11월 추축국에 가담한 헝가리는 독소전쟁은 물론 독일의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참여하면서 영토를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황이 불리해지자 헝가리는 소련과의 협상을 맺으려는 했고,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나치 독일은 헝가리를 먼저 점거해버립니다. 이때 철저하게 친독일적인 파시스트 정권인 국민단결정부가 1944년에 들어서는데 이 시기에 다수의 유대인이 학살됩니다. Holocaust Memorial Center가 부다페스트에 있는 이유입니다.
▲ Synagogue in the Holocaust Memorial Center
이 박물관의 특징은 다양한 인터렉티브 기능을 활용하였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직접 보고 듣을 수 있는 전시물이 많습니다. 당시의 포스터나 문구를 생생한 구조로 복원하여 관람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한 점도 돋보입니다. 관람을 마치고 나면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한 유대교 회당도 볼 수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다 성
▲ 부다 성
정확히는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 연안과 부다 성 지구, 언드라시 거리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화려한 도시경관과 역사적 가치 때문입니다. 1241년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에게 대패한 헝가리군은 1년 뒤인 1242년에 부다 성을 건설하였습니다. 강을 끼고 있고 고지대에 있어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예술가들이 몰려들어 문화적 중흥기를 누렸으나 1526년 모히치 전투에서 패배하며 헝가리 왕국은 멸망하였습니다.
▲ 박물관 입장권 비용
▲ the Triumph of Charles V of Lorraine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지배를 받을 때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지시로 궁궐을 신축하였으나 화재로 소실되었고, 1956년 헝가리 혁명 때에는 소련군이 파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1980년에 재건되어 박물관으로 변모하였습니다. 도시 자체가 워낙 다사다난한 역사를 품고 있다 보니 이를 다룬 작품이 많습니다. 그림은 대튀르크 전쟁 때 활약한 찰스 5세가 활약하여 헝가리를 탈환했던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 View of the town of Buda
▲ 1541년에 오스만 제국은 부다를 포위하여 점령했던 공성전을 묘사한 그림
도시 자체가 부다와 페스트에서,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왕국이 단절된 적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조명한 전시물도 많습니다. 몽골의 침입을 받고 요새로서 기능했던 시기와 오스만 제국의 침입을 묘사한 그림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박물관 내부
이 외에도 시기별로 잘 분류해두었습니다. 사진에는 넣지 않았지만, 고대 유물과 물품도 많으니 같이 둘러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 항거리 인민 공화국이었던 헝가리
헝가리 역시 동구권의 일원으로 1949년 8월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때 헝가리는 굴라쉬 공산주의(Goulash communism)라는 이름으로 친시장적, 개혁적, 실용적인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였습니다. 1956년 헝가리 혁명, 1968년 프라하의 봄처럼 소련의 심기를 거스르면 국제적 개입과 유혈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헝가리 정부는 유연하고 신중하게 실용정책을 추진해나갔습니다. 박물관에서는 그 시기의 전시물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 마차시 성당
마지막으로 마차시 성당에 대해 적어보고자 합니다. 부다 성에서 걸어가면 어부의 요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밤에 잠시 둘러본 마차시 성당의 정식 이름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지만 마차시 1세 왕가의 문장과 그의 머리카락이 있어 마차시 성당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이 성당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이 이루어진 곳으로 고딕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의 모습은 19세기에 보수된 것으로 1541년 오스만 제국이 부다를 점령할 때에는 모스크로 개조되었습니다. 훗날 1683년 제 2차 빈공방전 이후 대튀르크 전쟁이 전개되어 신성 동맹이 다시 부다를 포위할 때 신성 동맹의 대포가 성당 일부를 격파하였는데, 벽 속에 숨겨져 있던 성모 마리아 상이 나타나 오스만 제국군의 사기가 떨어졌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2차 대전 후 다시 복구를 거쳐 오늘날에는 부다페스트의 명소가 된 성당입니다.
▲ 부다 성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
설명이 길어졌지만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부다페스트의 풍경입니다. 관람을 마치고 사진을 찍고 다시 숙소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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