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점이 그렇게 높은 점수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피킹과 라이팅 점수를 단기간에 절대 올릴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리딩 26, 리스닝 24라는 제 점수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달동안 택했던 '느낌'위주의 공부법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 실력..
일단 제 원래 실력은요.
수능 영어 2등급, 대학 입학 이후로 4년간 영어 공부 일절 하지 않음.
대신 국어를 잘했고 책을 많이 읽어서 언어 자체에 대한 감이 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학원이나 인강, 사설문제집 없이 EBS 연계문제집만으로 모평, 학평, 수능 전부 1등급)
국어 실력을 왜 적었냐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노베이스에 싹다 템플릿 '암기' 만으로 시험칠 거 아니라면
진짜 국어 실력, 더 정확히는 '독서 능력'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어는 한국어보다 한 문장의 길이가 매우 깁니다. 그래서 한 문장 읽다가 다 까먹죠. 그러면 또 앞으로 가서 다시 읽고 다시 읽고.. 그러다가 시간 조절실패해서 멘붕오고 문제 날리고...
평소에 어떤 언어든 다독을 하게 되면, 문장을 읽어나가면서 한 문장 당 '이해'를 '보류'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져서 외국어 습득에 큰 도움이 됩니다.
긴 토플 문장을 읽을 때 한 단어, 한 구절이라도 이해가 안 되면 머릿속에서 쌓아나가던 정보가 와르르 무너지는 분들은,
영어보다는 국어 먼저 공부하시길 추천합니다.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문장 자체가 모르는 단어로 이뤄진 게 아니라면 대부분 언어적인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거거든요.
서두가 길었는데.. 정말 너무너무 급하게 토플 시험 쳐야 하는 분들 참고하시라고 제 공부법을 적어봅니다.
물론 국어실력 베이스가 어느정도 되어 있다는 가정하에요.
1. 단어와 리딩
저는 초록책 같은 시판 단어장 안 외웠습니다.
단, 오해금물입니다. 저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단어'장'을 안 외웠을 뿐 단어장 한 권은 언젠가 꼭 다 외워야 합니다.
단어장이 초록책이랑 능률보카 어원편이 있었는데 예문이랑 같이 외워도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고,
외운 단어가 지문에 바로 나오지도 않으니까 며칠 지나면 다 증발해버려서 외우다가 관두고 좀 다른 방법을 썼습니다.
일단 리딩을 매일 풉니다. 양이 꼭 많을 필요 없습니다. 저는 정규책(해커스 파랑이책)으로 공부했어요.
리딩 푸는데 진짜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한 지문에 모르는 단어가 막 30개.. 그냥 돈벌어서 여행이나 가고 토플은 때려칠까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하지만 좌절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붙들고 풉니다. 근데 오답을 꼭 합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나만의 단어장을 만들어서, 모르는 단어를 내리 다 적습니다. 지문별로 적습니다. 봤던 단어고 아는 단어인데 해석이 안 돼도 적습니다.
영어는 한국어처럼 단어 하나에 적확한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뉘앙스로 이해하기 때문에,
이 문맥에서 내가 아는 뜻으로 해석하면 좀 이상하다 싶은 건 전부 사전에 검색해보고 적습니다.
* 절대 지문 위에다가 단어 뜻을 적지 않도록 합니다.
Biology 지문, American History 지문 등 다양한 지문들이 있는데,
그냥 순서대로 모르는 단어들을 적게 되면 내가 단어장을 봤을 때 대충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아하, 이 내용의 지문이었지'하고 느낌이 와요.
그 단어장을 외우는 겁니다. 미친듯이 외울 필요 없습니다. 대충 단어를 딱 봤을 때 '으으으음..?'하고 느낌이 올 정도면 충분합니다.
(한국사람들이 단어장 외워봤자 도움 안된다고 말하면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적혀있는 딱 그대로만, 문자 그대로만 외워 버리니까 융통성이 떨어집니다. 강박 때문에 딱히 외워지지도 않는다는 게 제일 큰 문제고요.)
다음날이 되면 전날 풀었던 지문을 다시 읽습니다.
3일차에는 1일차, 2일차 지문 전부 다 읽습니다. 내가 만든 단어장도 다시 후루룩 봅니다. 문제를 다시푸는 것도 아니라 시간 얼마 안걸려요.
이렇게 하면 외웠던 단어들이 새록새록 생각나면서 문맥에 맞게 기억이 될 겁니다.
이거 일주일만 해도 데이터가 쌓여서 감이 생깁니다. 세가지 효과가 있어요.
첫째, 영단어의 뉘앙스 즉 느낌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은 riverbed(강바닥)라는 단어를 외웠고 어느 날은 seabed(해저)라는 단어를 외웠을 겁니다. 내가 아는 bed는 침대이지만, 이 두 단어를 머릿속에 넣고 나면 'bed'가 어떤 것의 바닥이나 아래쪽을 대충 가리키는 단어고 그래서 bed도 사람 아래에 있어서 대충 침대겠구나- 싶습니다. 그냥 단순히 '침대' 두 글자가 머릿속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bed'라는 단어에 대한 느낌이 생겨요. 사람 성격처럼요. 이게 영어에 대한 감입니다.
또다른 예로, 'invest'를 '투자하다'라고 알고 있었는데 '포위하다', '둘러싸다'라는 뜻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invest의 뜻을 두 개 따로 외울 게 아니라, '뭔가 감싸고 둘러싸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투자하다는 '뭔가 item을 돈으로 살짝 감싸서 이케이케 어케 하는 느낌적 느낌..', 포위하다는 '뭔가 막 확 감싸가지고 이케이케 어케 막 뭐 하는 느낌..'이런 식으로 단어를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하게 되면 막 '두개골 뒤쪽에 있는' 같은 별 해괴한 단어들도 대강 아 그냥 뭔가 어디 뒤쪽에 있는건갑다, 또는 아 그냥 뭐 신체의 위치인갑다 하고 대애애강.. 감이 옵니다. 한자어랑 비슷한 것 같기도..
둘째, 패키지로 같이 나오는 단어들이 외워지고, 잡지식이 쌓입니다.
catalyst(촉매)랑 enzyme(효소)가 자주 같이 나온다고 치면, 지문 읽다가 하나가 기억이 잘 안 나도 대강 요놈이 이런 식의 역할을 하는 놈이었는데.. 하고 느낌이 옵니다. biology자주 나오죠.. 저는 사실 이과였는데 물리를 했어서 생물학은 진짜 문외한이었습니다. 미술사, 미국 역사 이런 건 당연히 까맣게 몰랐고요.
근데 지문 자주 읽다 보니 '내용 공부'가 돼서 비슷한 지문이 나오면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단어가 기억이 안 나도 문맥파악해서 유추도 되고요.
셋째, 단어 따로 리딩 따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서 독해력도 길러지고, 단어가 머릿속에 오래 남습니다.
단어를 외우는 이유는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서인데, 영어와 한국 일대일로 단어를 외워버리면 아예 문장 해석도 안돼요. 문법 다 알고 단어 다 아는데 해석 안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걸 예방해줍니다.
여기에 해당 안 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걔네는 그냥 기초중에 기초인데 이상하게 안 외워지는 주요 동사 및 형용사들일 확률이 높은데 이 친구들은 그냥 아닥하고 외워버립시다..
저는 리딩 지문에서 모르는 단어만 뽑아다가 이런 식으로 단어 외웠습니다.
공부 시작할 때만 해도 한 문장에만 모르는 단어 5개씩 있는 노답상태였는데, 뉘앙스를 이해하니 단어를 '완벽하게 적혀있는 뜻대로' 외우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시판 단어장 외울 때도 이 방법 병행하면 효과 좋을 것 같아요. 특히 능률보카 어원편으로 기초 영단어 하고 넘어가면 초록책도 외우기 쉬워질거예요.
2. 리스닝
노트테이킹 하지마라
내가 문제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 하면 오히려 노트테이킹 하지말고 풀어보세요.
노트테이킹하다가 흐름 다 놓치고 뒷이야기 아예 이해 못하게됩니다. 리스닝 10점대에게 노트테이킹은 사치예요.
근데 시험 때는 노트테이킹 필요합니다. 즉 시험 때 노트테이킹을 하기 위해서 처음에 노트테이킹을 안하는거죠. 아니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냐.
문제를 풀 때, 노트테이킹을 하지 않으면 문제의 80퍼센트는 맞히지만, 사실비교 문제를 틀리게 돼요. 이게 바로, 리스닝 초보자가 노트테이킹을 하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문제에 대한 감이 없으면 노트테이킹 할때 무식하게 다 적고 봅니다. 근데 말은 빠르고 손은 느리기 때문에 놓치는 거지요. 그러면 문제에 대한 감도 한참 동안 못잡게 되고(아예 듣지를 못했으니;;;) 갑자기 노트테이킹을 안하려니 불안해서 그렇게 못해요.
처음부터 노트테이킹을 하지 않고 문제를 며칠 풀다보면 노트테이킹을 했어야 하는데 못한 부분들이 쌓여요. 대신 렉처를 주의깊게 들었었기 때문에, 오답노트를 할 때 정확히 어떤 부분을 노트테이킹 못했는지 압니다.
그 감이 딱 정립이 되면, 렉처를 들을 때 '아! 지금 교수의 말은 완전 노트테이킹 감이야!!!'하고 느낌이 옵니다. 그 시점부터 연필과 함께 리스닝을 공부하면 돼요.
미드로 감 익히기
이건 사람마다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심성이 초조한 분들은 이 방법 쓰지마세요. 공부 안하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 받고 시험 망칩니다.
리딩으로 주제별 단어를 외우고 있기 때문에 렉쳐 리스닝 단어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고 치고, 저는 하루에 미드 5편씩 봤습니다.
(물론 리스닝 정규책은 하루에 적어도 4문제씩 풀고요.)
한글자막 놓고 봤는데, 대신 귀를 열고 영문장과 한글문장을 비교해가면서 들어야 합니다. 이것도 위에 적은 리딩 단어 공부법처럼 느낌 키우는 공부법이에요.
영문장 구조의 느낌을 대강 잡게 됩니다. 듣다가 대체 뭔 문장이냐 싶으면 돌려서 영자막으로 그 부분만 다시 봅니다. (VOD 서비스 구독해야 유효한 방법이네요..) 이러면 무식하게 빠르고 굴리는 발음에 대해서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는데, 리스닝 실력이 아예 바닥이다 하면 이거 하지마시고 그냥 리스닝 책 푸는 걸 추천합니다.
이렇게 다 적고보니까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것같기도 하네요..
제가 실제로 한달 동안 급박하게 영어공부 하면서 과감하게 쌓아본 제 방법을 적어봤습니다.
70점대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