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돌이는 치킨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리고 보라돌이의 친구 뚜비도 치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환장해서,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둘은 저녁에 치킨집에서 치킨 먹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가게에 들어가서 테이블에 앉고, 보라돌이가 사장님에게 '사장님 여기 후라이드 한 마리 주시겠어요?'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순간, 뚜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보라돌이야, 너 뭘 모르네! 치킨은 당연히 양념 아니야? 사장님 여기 후라이드 말고 양념으로 부탁드립니다!'
보라돌이는 후라이드치킨이 아니면 안 먹는 순혈 후라이드파여서, 양념치킨파와는 절대 타협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보라돌이는 뚜비를 후라이드파로 영입해야겠다는 결심을 내렸습니다.
이때, 보라돌이가 뚜비를 후라이드파로 데려오기 위해 설득하려면 다음 중 어떤 말이 더 효과적일까요?
1. '뚜비야, 양념치킨은 매콤해서 맛있어. 후라이드는 바삭해서 맛있고.'
2. '뚜비야, 후라이드치킨은 바삭해서 맛있어. 더군다나 고소하기까지 해!'
답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초등학생에게 문제를 내도 다 맞출 것이므로 굳이 정답을 적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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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일화를 바탕으로, 이번 글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수험생들이 정말 많이 범하는 오류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아이엘츠 Task 2의 논제들은, 각각 출제자가 수험생들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면
1. 대비되는 두 입장을 잘 소개하고, 이에 대한 내 의견을 서술할 수 있는가?
2. 주어진 사항에 대해 내 생각을 작성할 수 있는가?
3. 주어진 문제에 대해 원인 혹은 영향을 밝혀내고,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가?
4. 특정 사항의 장단점을 설명할 수 있는가?
4-1. 특정 사항의 장단점 중 무엇에 더 가중치를 두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의 4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조금 더 다양해지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의도의 논제도 아주 간혹 출제가 됩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저정도로 보시면 돼요. 이번 글을 통해서 저는, 2번에 대해서 말씀드릴 겁니다.
참고로, 시험장에서 기계적으로 문제를 대충 쓱 본 다음에 바로 허겁지겁 글 작성에 착수하지 않고, 딱 10초만 논제를 뚫어져라 쳐다본 다음에, '이 출제자가 나한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그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글을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를 고민해보면, 원인-해결형, both views 형 등으로 논제의 유형화 없이도 충분히 그 어떤 글에 대한 답변도 깔끔하게 작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록 지금은 따로 개인 수업을 하지는 않지만, 예전에 대면으로 개인 수업을 했을 때에는, 10명 중 9명의 학생이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 글의 목적을 명확히 심어두고 가는 것, 혹은 개요의 작성 없이, 바로 글쓰기에 돌입하더라고요. 정말 안 좋은 습관이니까, 지금부터라도 꼭 고쳐야 합니다. 시작 전에 10초, 길어야 1분을 돌아가는 것이, 결국 시간 단축과 점수로의 지름길이 됩니다.
2번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발문으로는, to what extent do you agree or disagree with this statement? 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Do you agree or disagree? What is your opinion? 등 조금씩 변형되는 경우가 존재하고요. 그러나 어떻게 변형되어서 출제되든, 이에 대한 글을 쓰는 목적은 모두 '주어진 사항에 대해 나의 의견을 작성하는 것' 으로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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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다시 우리의 텔레토비 친구들을 만나러 가볼까요? 수험생 나나와 뽀는 아이엘츠 시험장에서 다음과 같은 논제를 받았습니다.
보라돌이 believes that 후라이드치킨 is more delicious than 양념치킨. To what extent do you agree with this statement?
나나는 보라돌이와 마찬가지로, 후라이드가 아니면 입에 대지를 않으며, 양념치킨을 먹는 사람들을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고로 보라돌이의 주장에 100% 동의합니다. 즉, 후라이드치킨이 양념치킨보다 더 맛있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생각을 글로 전개하려고 합니다.
반면에 뽀는 자신의 색깔이 빨간색이어서 그런지, 양념치킨을 좋아하는 반면 후라이드파와는 하늘이 무너져도 손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뽀는 위의 보라돌이의 주장을 빨리 반박하고 싶어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근거, 즉 본론 문단의 갯수가 2개가 주어진다면, 이제 이 2개의 구체적인 내용은 둘째치고, 최소한 2개에 어떠한 방향의 내용이 와야할지에 대해서는, 학생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글을 충실히 따라오셨다면 별 문제 없이 추론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나나는 후라이드가 맛있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를 작성하면 될 것이고, 반대로 뽀는 양념이 더 맛있는 이유를 두 가지 서술하면 됩니다.
여기서 잠깐! 보라돌이의 저 주장에 대해 반대할 경우, 진짜 엄밀히 따지자면 뽀가 취해야 할 스탠스는 '양념이 더 맛있는 이유' 가 아닌, '후라이드가 양념보다 맛있지 않은 이유' 입니다. 둘은 엄밀히 전혀 다른 사항입니다. 논리학에서 '길다'의 반대가 '짧다' 가 아닌 '길지 않다', 즉 A의 반대가 B가 아닌 not A 인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보시면 되는데, 일단 지금의 내용은 조금 심화된 사항이며, 제가 이 글을 통해서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게 아니므로 그냥 7점 이상이 필요하신 수험생들 정도만 참고해주세요~
위에 비추어 봤을 때, 나나는 양념이 맛있는 이유에 대해 서술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뽀가 후라이드를 찬양하는 이유를 쓰는 건 말이 안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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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후라이드 vs 양념 말고, 실제 논제를 살펴볼까요?
Some people believe that arts do not improve people's lives. Therefore, government should not spend money on it. To what extent do you agree or disagree?
수험생 둘리는, 미술 등의 예술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봐서, 정부가 이에 대한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둘리가 자신의 입장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예술에 대한 투자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두 개 넣어주면 됩니다. 그리고 둘리가 서론에서 분명히 '나는 정부가 예술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에 동의한다.' 라는 문장을 넣었을 것이고요. 그런데 두 개의 근거 중 하나로, 정부가 예술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를 넣었다? 둘리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공룡 친구는 방금 본론 하나의 분량과, 이를 작성하기 위한 시간을 통째로 허공에 날린 것에 불과하며, 도우너와 마이콜 등의 수험생이 두 개의 본론으로 평가를 받는 동안 둘리는 한 개의 본론으로만 평가를 받습니다. 글의 일관성 등은 제외하고 보더라도, 그냥 객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양에서부터 도우너와 마이콜 등의 글에 비해 불리하겠죠.
이렇게 피를 토하면서 열심히 말씀드렸으니까 이제 제가 글을 통해 무엇을 수험생 여러분들께 전달하려고 하는지 잘 아실 겁니다. 글을 작성하는 목적이 '내 주장/생각을 전달하는 것' 일 경우, '내 주장과 반대되는 입장' 을 설명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단순히 agree/disagree 가 포함된 논제에만 해당되지 않고
Advertising is all around us, it is an unavoidable part of everyone's life. Some people say that advertising is a positive part of our lives while others say it is a negative one. What is your opinion?
과 같이 다양한 경우에 적용이 됩니다. 이 외에도, 그냥 아이엘츠를 치를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는 수험생이 발문을 읽으면, 딱 '아, 출제자는 내가 내 의견에 대해 작성하기를 원하는구나' 라고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잡을 수 있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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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은 수험생분들께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의문이 들 수가 있습니다.
1. 선생님, 저는 후라이드파인데 그러면 본론 1에는 양념을 부정하고 본론2에는 후라이드를 긍정해도 되나요?
2. 선생님, 저는 반반치킨이 좋은데 그러면 어떡해야하나요?
각각에 대한 답변을 드리자면,
1번의 경우 가능합니다. 양념을 부정하는 것과 후라이드를 긍정하는 것은 큰 틀에서만 보면 어느정도 같은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죠. (이때 당연히 간장치킨, 마늘치킨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합니다. 얘네까지 고려해서 따지고 들어가면 답이 없어지고, 그건 논리학 시간에서 해주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냥 아이엘츠 졸업만 하면 되고요.) 지금은 후라이드/양념으로 간단한 쟁점을 잡았지만, 실제 논제에 반영되는 사항들은 조금 다르기 때문에, 위의 'A의 반대는 B가 아닌 not A 이다' 에서 설명드렸듯이 엄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조금씩의 오류는 있을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건 심화사항이고, 제가 여기에 글로 설명드리기 조금 어려우며, 7.5 이상이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굳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양념 부정/후라이드 긍정'도 된다. 정도로만 기억해주세요~참고로 이와 같은 구조가 '후라이드 긍정1/후라이드 긍정2' 보다 더 잘 들어먹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심화 내용이며 글로 적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길어서 따로 적지는 않겠습니다. 아 나는 아무리 읽어도 not A 이고 뭐고 모르겠다 싶으면 그냥 후라이드 근거를 두 개 넣으세요. 이게 제일 안전하며, 뭐가 됐든 '양념 긍정/후라이드 긍정' 만 아니면 됩니다.
2번은 질문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꾸자면, '선생님, 저는 아이디어가 부족해서 그런지, 한 쪽에 대한 근거를 두 개 생각해내기가 너무 어려워요ㅠㅠ이럴 경우 어떡해야 될까요?' 정도가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오로지 여러분들의 점수만을 고려했을 때 드릴 수 있는 답변은 '머리를 쥐어짜내서 근거를 하나 더 생각해내세요.' 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이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후라이드/양념의 경우 반반치킨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하니까, 서론에서 '나는 보라돌이의 의견에 일부 동의해. 왜냐하면 후라이드도 맛있지만, 양념도 나름의 매력이 넘치기 때문이야.' 라고 내 입장을 적은 다음에 본론 하나에는 후라이드의 장점, 또다른 본론에는 양념의 장점을 적으면 깔끔하게 구성이 완료됩니다. 뭐가 어찌됐든 보라돌이의 주장에 대한, 반반치킨이라는 내 의견을 적었으니까요.
그러나 실제 시험에서 논제가 후라이드/양념처럼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되게 많습니다. 실전에서는 주어진 사항에 대해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 없게, 혹은 중립의 입장을 취할 수 없게 짜여진 논제들도 간혹 존재합니다. 이때 집에서 편하게 보더라도 이게 부분적인 동의가 깔끔하게 되는 건지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해내기는 쉬운 게 아닌데, 실전에서 시간 압박이 있는 상황 속에서는 절대 구별하지 못한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더군다나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 즉 extent 에 관해서 (예를 들면 5:5 완전 중립, 7:3 부분 중립 등), 정말 명필이 아닌 이상 누가 봐도 명확하게 적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제가 쓰더라도, 7:3이라는 주장을 담은 글을 100명한테 들고 갔을 때, 그 100명 모두에게 이 글이 7:3이구나라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글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자신은 없으며, 이는 다른 선생님들, 그리고 채점관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도, 그들도 사람이고, 결국 '정도' 는 어느정도 상대적인 표현이니까요. 물론, '선생님 저는 이걸 부분동의를 깔끔하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선생님ㅠㅠ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근거가 하나밖에 안 떠올라요' 라는 수험생분들도 계실 것이고요. 솔직히 정말 추천드리지는 않지만...그래도 말릴 수는 없으니까 이 경우 잘 써보시면 됩니다. 대신 저는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고, 글을 쓴 다음에는 기도하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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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긴 글을 읽지 못하는 수험생분들을 위해 간단한 1줄 요약을 남기고 마무리짓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내가 후라이드가 먹고 싶으면, 양념은 손도 대지 말고 후라이드에 대해서만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