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떠나는 이공계 박사급도 1.7배나 늘어
◆ B급국가 바이러스 ③ ◆

"한국에 돌아가면 가족들과 생이별해야 할 판입니다. 대학엔 자리가 없고 기업 연구소는 다 지방에 있는데 어떻게 돌아갑니까. 차라리 미국 방산업체에 취직해서 시민권이라도 따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있다고 하지만 이등 시민이면 어떻습니까." 삼성장학금, 국비유학생 등 화려한 스펙으로 미국 S대학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딴 A씨(40)는 결국 귀국을 포기했다. 서울 시내 교수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그마저도 뒷구멍으로 기부금을 요구했다. 공공기관과 대기업 연구소의 채용설명회도 쫓아다녀 봤지만 지방 근무여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선 귀국 즉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20일 본지가 미국과학재단(NSF)의 '2016년 과학엔지니어링 지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2010~2013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 이공계 전공자 4683명 가운데 국내로 '유턴'하겠다는 비율이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 체류 의사가 있다는 응답자가 65.1%에 달했다. 계열별로 보면 생물학 전공자의 86.2%가 '미국에 남겠다'고 답해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물리학(69.6%), 수학(68.2%) 등 기초학문 전공자의 잔류비율도 평균치를 넘었다.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데 우수 인재 확보는 필수요건이다. 인공지능 '알파고' 시대를 맞아 우수한 이공계 인력 유치는 국가발전의 토대다. 하지만 이공계 인력 국내 유치를 위한 전략 부재, 투자 부족,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우로 인해 '두뇌유출(Brain Drain)'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연일 이공계 인력 우대와 창의성을 외치지만 말의 성찬뿐이다.
대기업 IT 연구원으로 5년간 근무한 박창효 씨(가명·45)는 3년 전 고심 끝에 미국 대형 연구소로 이직했다. 서울대 공대와 대학원을 나온 박씨는 이직 이유에 대해 "국내 대학이나 대기업 연구실은 윗선에서 정한 기한이나 목표를 맞추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쫓기듯 일해야 한다"며 "그러다 보니 창의적인 연구는 꿈도 못 꾼 채 신제품 개발에만 몰두하는 게 전부"라고 토로했다. "한국에는 연구가 없고 개발만 있을 뿐"이라고 한탄한 그는 "연봉도 2억원 수준인 데다 자녀 교육여건도 좋아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은 없다"고 귀띔했다.
국내 이공계 인력의 해외 유출도 심화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2015년 이공계 인력의 국내외 유출입 수지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 취업으로 한국을 떠난 이공계 인력은 2003년 1만2312명에서 2013년 1만8360명으로 50% 급증했다. 특히 한국을 떠난 박사학위자 비율은 같은 기간 3302명에서 8931명으로 1.7배나 늘었다.
이런 인력유출의 결과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2015 세계 인재 보고서'에 그대로 반영됐다. 전 세계 61개국을 대상으로 두뇌유출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3.98로 42위를 차지했다. IMD가 고안한 이 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고국을 떠나는 인재가 많다는 의미다. 조사 대상 중 두뇌유출이 가장 적은 나라는 노르웨이(8.27)였고, 미국(6.82) 일본(4.49) 중국(4.07) 등 주요국들은 모두 한국보다 순위가 높았다.
우수한 두뇌들의 해외 유출이 가속화되는 이유로는 연구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근무여건이 지목됐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지난 7월 이공계 박사 1005명을 대상으로 '두뇌유출이 심화되는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지나친 단기 실적주의와 연구 독립성 보장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59%로 가장 많았다. 국내 일자리 부족(41%), 선진국보다 열악한 처우(33%), 연구비 부족(17%)에 대한 지적이 뒤를 이었다.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해외 대학의 조교수로 임명되면 적게는 8만~9만달러(약 9000만~1억원)를 초임 연봉으로 받을 수 있고, 애플이나 구글 등 글로벌 기업으로 방향을 돌리면 15만달러(약 1억7000만원)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대학 교수는 1년 차 연봉이 국립대의 경우 약 4000만원(수당 별도), 사립대는 6000만원 수준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최근 조사한 이공계 처우조사에서도 이공계 박사의 연간소득은 평균 7854만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직장인 평균연봉(3198만원)보다는 높지만 유학비용과 늦은 취업연령을 고려하면 많은 액수는 아니다. 한 공대 교수는 "보통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밟고 한국에 오는 시점이 30대 중·후반인데, 몇 년만 지나 40대가 되면 자녀 교육을 위해 살인적인 사교육비를 감당해야 하는 나이가 된다"면서 "대다수 해외 박사들은 모아 둔 돈도 없다 보니 자연스레 외국행을 선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한국보다 한발 앞서 두뇌유출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08년부터 '천인계획(千人計劃)'을 통해 해외에 있는 과학과 공학 분야 우수인재를 국내로 재영입하고 있다.
홍성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구여건과 처우, 경력계발에서 우수한 인재에게 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며 한국판 '천인계획'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경현 서울대 공대 교무부학장도 "인재 영입을 위해선 중국의 강점인 천문학적 투자와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기업에 혁신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특별취재팀 = 이승훈 기자 / 이상덕 기자 / 전정홍 기자 / 정의현 기자 / 황순민 기자 / 부장원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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